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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Side
2008.9.3~10.12
두아트 서울

돌이켜보면 난 그 동안 그다지 많은 그룹전을 하지는 않았다. 한 작가의 작품세계에 보다 충실할 수 있는 개인전 형식이 나에겐 좀 더 흥미로웠기 때문이고, 이러한 개인전들이 모이다 보면 언젠가 현대미술 현장에 대한 나의 입장이 어느 정도는 윤곽을 갖게 되겠지 하는 생각에서 굳이 의식적으로 미술현장에 대한 이슈들을 찾으며 ‘나의 발언’을 위한 그룹전을 기획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이런 저런 이유에서 그룹 기획전을 할 기회가 생기곤 한다. 그럴 때 마다 매 번 전시를 위한 인위적 이슈나 구태의연한 주제로 작품들을 묶는 것이 갑갑하게 느껴졌고, 이 번에도 역시 나는 이러한 문제를 살짝 빗겨나갈 수 있는 하지만 그 어떤 강요된 담론들 보다 설득력 있고 풍요로운 전시를 구성 할 수 있는 컨셉이 필요했다.… 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결국 난 이 번 전시 제목을 B Side로 결정했다. LP시대 전통인 B Side는 음악가들에겐 여전히 유효하고 그들의 음악세계를 위해서 필요한 공간이다. A Side에 수록되는 음악들과는 뚜렷하게 구분되며, B Side의 ‘다름’은 A Side가 있기 때문에 그 고유의 의미를 갖게 된다. 예를 들어 B Side에는 악기, 리믹스, 어쿠스틱 버전으로 만든 A Side 수록 곡들, 앨범의 메인 컨셉 혹은 스타일과 맞지 않아 A Side에 넣기 힘든 곡들, 앨범 제작 당시 완성되지 않은 음악들의 한 부분, 다른 뮤지션의 노래들을 새로운 버전으로 만든 곡들, 그리고 음반사가 생각하기에 상업적/대중적으로 히트할 것 같지 않다고 판단되는 곡들이 수록된다. 물론 이 번 B Side 전시가 음반의 B Side전통을 차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의 다양한 ‘카테고리’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B Side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요컨대 뮤지션들에게 B side는 모든 상업적 스트레스나 대중적 히트에 대한 강박증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는 일종의 ‘공식적 자유 영역’이다. 상업적 성공과 대중적 히트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을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 오는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적당히 풀어 줄 수 있는 ‘친구들만의 파티’ 같은 앨범의 B Side 역할 또한 작가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작가들에게 A Side가 표면 위로 이미 떠 올라 있는, 그래서 그들을 알릴 수 있었던 메인 스타일을 위한 공간이라면, B Side는 그 표면 밑에 ‘유보’된 발언을 위한 공간이다. 뮤지션들에게는 이 표면 밑의 발언들이 대부분 ‘유보’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앨범의 B Side가 존재하기 때문에. 하지만 작가들에게는 언제나 A Side 앨범만이 있다. 이 ‘유보’의 이유들은 작가마다 무척이나 다양하겠지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의 A Side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에 기인한다. 작가들에게는 언제나 표면 위에서 알려진 것을 더욱 더 견고하게 더욱 더 완벽하게 더욱 더 일관성 있게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우선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과정에 대한 비판은 아니다. 다만 그것과 병행해서 또 그것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그들에게 이따금 스쳐 지나가는 ‘또 다른 생각들’도 그들의 메인 스타일 만큼 중요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일 이 전시가 작가들에게 ‘B Side 앨범’을 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어떨까… 과연 작가들은 그들의 숨겨진 측면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있을까? 그들에게 메인 작업을 보여 줄 수 있는 전시만큼 흥분되는 초대일까? 나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B Side 작품들 그래서 호기심은 생기지만 확신할 수 없는 결과들로 전시가 가능할까? 수 많은 질문들이 있었지만, 그런 만큼 B Side 컨셉 만이 가질 수 있는 특성들이 서서히 부각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잔잔한 분열, 조용한 도전, 숙고된 위기, 유보된 자유, 불 확신한 믿음이 있으며 동시에 작업 이외의 불필요한 스트레스나 압력이 없는 보다 많은 즐거움과 여유로움이 가능하다. 이 B Side 공간에서 22명의 작가들은 우리에게 예기치 못한 기쁨과 풍요롭고 색다른 경험을 제안하며, 우리를 긴밀하고 솔직하며 신나는 그들의 쿨한 파티로 초청하고 있다. B Side전시에 초청된 22명의 작가들의 작품들은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그 어떤 공통된 주제나 이슈를 갖고 있지 않다. 반면 작품 하나 하나의 특이성이 부각되며 동시에 이 모임들이 발산하는 에너지 자체가 작품을 둘러싼 그 어떤 담론보다 강하게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그 어떤 심오한 이슈나 주제보다 더 흥미로운 ‘작품읽기’가 가능한 ‘자유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거나 다’할 수 있는 절대적 자유는 아니다. A Side와 연관된 ‘상대적 자유’의 ‘틀’ 안에서 이야기 될 수 있는 전시다. 그래서 이 B Side 전시는 작가들의 작품을 보는 ‘방법’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작품을 둘러싼 다양한 담론이나 이슈에 의해서가 아닌, ‘작품 그 자체’를 인지하면서 작가들 고유의 특이성을 만끽 할 수 있다. 우선적으로 이 전시는 22명의 참여 작가들의 A Side를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에 보다 더 흥미롭게 느껴질 것이다. 반면 이 작가들의 메인 작업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B Side란 전제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들의 A Side에도 관심을 갖게 만든다. 이 전시는 작가들 개개인의 보여지지 않았던 그들의 B Side를 보여 주면서 이미 보여진 A Side에 대한 관심을 배가하고, 작가 개개인의 작업세계로 깊숙이 들어 갈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즉, B Side는 A Side를 더욱 더 잘 이해 할 수 있는 보완적 역할을 하며 완벽한 하나의 몸통을 형성하게 된다. 전시 장소는 ‘중립’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그 장소만이 갖는 특유의 역사와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전시를 결정하는 순간 이 장소의 컨텍스트는 자연스럽게 기획 의도 저변에 깔리게 되는 것이다. B Side 전시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상업화랑이라는 컨텍스트 자체에 대한 ‘직설적 반격’ 혹은 ‘순진한 저항’은 물론 아니다. B Side 전시는 아트와 비즈니스의 ‘위험한 관계’에 대한 강한 부정이 아닌, 조용한 긍정이다. 가령 유명한 음반 회사가 다양한 음악인들의 B Side 곡들만을 모아 앨범을 낸다고 가정해 보자. 스타들의 히트곡만을 뽑아내고, 판매 위주의 전략에 올인 하는 음반사에게 이러한 방향 전환이 가져다 주는 효과는 무엇일까? 음악인들과 음반계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여기에는 히트곡 제조, 스타 시스템, 세일즈라는 삼박자 전략에 가려졌던 ‘다른 모든 가치들’이 존재하며, 상업적 대중적 성공 못지 않은 또 다른 플러스 알파의 중요성이 존재한다. 물론 그 음반사가 운(?)이 좋다면 심지어 이것도 상업적 성공을 거두겠지만… 이렇듯 상업화랑인 두 아트 갤러리에서 작가들의 메인 스타일이 아닌 그 이면을 보여주는 B Side 전시는 현재 국내 미술시장의 현기증 나는 상승 무드에 가려 잠시 잊혀진 ‘미술’의 보다 ‘근본적인 가치들’과 그것을 진지하게 수용하는 ‘태도’에 관한 전시다. 이것은 또한 아트와 비지니스의 ‘현명한 동거’ 그리고 양자의 가치의 ‘정당한 공존’을 위한 시도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B Side전시 소개 될 작품들의 윤곽은 알고 있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까지 난 아직도 B Side전에 소개될 완성된 작품들을 대부분 보지는 못 했다. 머리 속으로 수 십 번 완성된 전시 뷰를 상상 해보지만, 여전히 실제 모습이 궁금하다. 작품에 대한 호기심과 흥분, 그것들이 모였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뜻밖의 만남들, 그 만남들이 가져다 줄 수 많은 이야기들… 시종 진지한 태도와 즐거운 마음으로 이러한 모험에 응해 준 22명의 작가들의 ‘B Side’ 전시가 우리에게 색다른 경험을 가능하게 하고, 예기치 못한 기쁨을 선사하며, 미술시장, 메인 스트림, 스타 시스템의 ‘화려한 성곽’에 소리 없이 침입하여 잔잔한 파문을 던지기를 기대해 본다.

- 김성원 2008. 08.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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