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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정상화 개인전
2014.7.1~7.30
신관,두가헌

사각형 또는 삼각형으로 나타나는 작은 단위의 형태들은 무수하게 반복되는 떼어내기와 다시 칠하기란 행위를 통해 남아난 자국들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무상의 행위는 어떤 것을 그린다든지 표현한다는 회화의 차원을 저만큼 벗어난 것임이 분명하다. 사각이나 삼각형을 이루는 섬세한 테두리는 화면을 떼어내고 다시 칠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흔적으로서 인위적으로 그려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섬세한 자국들은 반복이라는 행위의 진행에서 얻어진 부가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사실은 이 자국들이야말로 그의 작품을 이루는 요체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 같은 측면에서 본다면 그의 작업은 대단히 구조적인 과정을 통한 표면의 자각 또는 화면에의 환원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작업이 단순한 반복행위의 지속인 만큼 그가 선택하고 있는 색채도 대단히 제한적이다. 흰색과 검은색의 대비가 중심을 이루는 한편 청색과 흰색이 점진적인 그라이데션을 이루는 경우, 또는 짙은 브라운의 색채가 가끔 등장한다. 근래에 오면서 청색계통의 작품이 많아지는 것이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흑백의 대비에서 오는 긴장감대신에 밝고 투명한 깊이의 차원을 만나게 된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곳과 청소년기를 보낸 지역이 항구도시였다는 사실과 이 청색의 빈번한 등장은 어떤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푸른 바다를 보고 자란 작가의 감수성에 청색이 깊이 감염되지 않았을까. 파란 바다의 수면이 햇빛을 받아 파닥이는 모습이 어느듯 잔잔하게 물결치는 것 같은 그의 화면에 오버랩 됨을 발견하게 된다. 파란 바다를 보면서 꿈을 키웠던 작가는 오랜 세월을 격한 시점에 와서 자신이 걸어온 행로를 하나의 사유의 형식으로 되돌아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 오광수, 미술평론가, [사유의 형식으로서의 화면 -정상화의 작품에 대하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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