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s 리스트보기 슬라이드보기 Current Upcoming Past


김현수: breik
2009.3.28~4.26
강남

몽상적 사유를 통한 표현의 진실성 중세 시인들이 관습적으로 널리 사용한 서술의 한 형식으로, 꿈을 알레고리화하는 몽상(Dream Vision)은 김현수 작가 특유의 표현방식을 충실히 대변한다. 몽상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각기 다른 시공간을 꿰뚫어 비선형적으로 부유하는 정신활동으로, 과거의 경험에 바탕을 둔 상상화된 기억에 현재의 내가 가진 욕망이 더해지면서 미래, 혹은 미지와 연관된 상황을 상상해 내는 일종의 낮에 꾸는 꿈을 일컫는다. 이러한 몽상은 김현수의 작업을 통해 작가의 어린 시절 유희의 연장선상에 위치한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들과 판타지의 묘사로 드러나는 데, 이는 김현수 조각 특유의 실물에 최대한 가까운 인체조각이 보여주는 극사실주의적 표현방법으로 시각적 아이러니를 통해 그 진실성과 절실함을 배가시킨다. 즉, 극사실주의는 주관을 적극 배격하고 어디까지나 중립적 입장에서 사진과 같이 극명한 화면을 구성하는 것이 그 특징이나, 김현수의 작업은 외적인 면에서는 실물에 최대한 가까운 극사실주의 조각을 표방하지만 내적으로는 매우 주관적인 내러티브를 근본적으로 안고 있다. 작가의 손을 거쳐 극히 사실적으로 실현될 몽상이 만들어지는 데에는 과히 놀랄만한 정성과 노력 그리고 물리적 시간이 요구된다. 내러티브가 완성되고 현실화 될 캐릭터와 포즈가 결정되면, 골조를 만든 후 골조 위에 흙을 덧붙이는 과정이 시작된다. 이 과정을 통해 미세한 혈관과 땀구멍까지도 표현된 극사실적 외형은 이후 폴리에스테르 레진으로 틀을 떠내는 캐스팅 과정을 거쳐 전체적인 윤곽을 드러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체는 유화물감을 통한 컬러링 작업으로 생명을 부여 받고, 가발을 씌우는 것이 아니라 한 올 한 올 정성스럽게 심어서 완성된 머리와 눈썹 그리고 내러티브 전달을 위해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눈알 등의 묘사를 통해 생명을 부여 받는다. 세심하게 묘사된 육체 굴곡의 묘사는 물론 땀구멍과 핏줄의 자취가 살아있는 살갗의 정교함, 팽창과 위축을 반복하는 살아 숨쉬는 듯한 혈관의 움직임,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미세한 눈동자의 떨림 까지도 시각화하는 작가의 표현력과 세심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간이 고정된 환상 세계에 존재하는 생명체와 조우하게 한다. [breik] 展을 통해 김현수가 선보이는 작품들을 관통하는 핵심소재는 크게 소년과 뿔이다. 소년은 작가 자신의 페르소나로서 전체 이야기 구조의 주체이며, 뿔은 소년으로 대체된 작가가 거부하는 성인으로의 성장을 상징하면서 전시 전체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이는 작품 에서 극명하게 표현된다. 작품 속 소년은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어가면서 자연스레 자라나는 뿔을 거부한다. 뿔의 완전한 성장은 어른으로서의 내적 그리고 외적 성장을 의미하기에 소년은 이를 부정하고 영원히 소년으로 남고자 하는 욕망을 뿔을 꺾는 행위로써 표출시킨다. 작품 속 소년은 작가의 이전 작품인 <꿈 속에서 소년을 보다>에서 점점 자라나는 뿔을 감추기 위해 커다란 털모자를 쓰고 허탈한 듯 허공을 바라보는 바로 그 소년의 미래이기도 하다. 작가의 페르소나가 등장하는 또 다른 작품 에서 소년은 꿈을 꾸듯 잠들어 있다. 잠이 든 소년은 어디든 날아가고 싶은 작가의 욕망과 판타지를 대변하듯 날개를 달고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않을 듯한 평화로운 단잠에 빠져 있다. ‘어느 날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는데, 훨훨 날아 다니는 나비가 되어 저절로 깨치고 멋대로 지내느라 본인이 장주임을 알지 못했다’ 는 장자의 [호접지몽]을 연상시킨다. 꿈과 현실의 차원을 교차하는 장자를 통해 바라보는 본 작품은 작가가 판타지 세계를 통해 연구하는 인간의 참 자유가 무엇인지를 사유하게 한다. 주체는 변경되었지만 시리즈가 풀어내는 이야기 또한 소년 연작과 흡사하다. 뿔이 상징체이며 상대의 뿔을 꺾음으로써 본인과 가족을 방어하는 습성을 가진 사슴 중 아직 뿔이 자라지 않은 어린 사슴과 뿔이 나지 않는 어미 사슴을 묘사하여 투쟁과 권력의 구조에서 벗어난 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반면 시리즈를 통해 작가는 페르소나와 성장을 기반에 둔 소년의 성장 서사에 관한 직접적 묘사가 아닌, 그들이 살아가는 판타지 세계에 대한 주변부 묘사를 시도한다. 김현수 작가의 인어는 인어전설의 여러 분류 가운데에서도 호메로스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명성을 가진 마녀에 가깝다. 인어는 여성의 유혹 내지 속임수를 상징하는데, 그 이유는 섬에 선박이 가까이 다가오면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선원들을 유혹하여 바다에 뛰어드는 충동을 일으켜 죽게 만드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인어의 노래는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이어서 수많은 남성들이 목숨을 바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시리즈 속에서 묘사된 신화와 전설 속 존재인 인어의 극사실적 표현은 마치 영화의 조연이나 연극의 무대배경처럼 커다란 흐름의 중심은 아니지만 그 존재로서 작가가 구축한 판타지 세계와 전체 이야기구조를 탄탄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동화적 상상과 순수함이 존재하는 김현수 작가의 작업에는 시각적으로는 판타지를 이야기함에도 불구하고 분명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 담겨있다. 작가는 망각되거나 혹은 상상만으로 머물게 되는 과거의 기억이나 판타지에 감각과 생명을 불어넣어 더 이상 낮에는 꿈을 꾸지 않는 이들에게 몽상의 기쁨과 그 힘을 전달한다. 극사실적 묘사를 통해 실제 보는 이의 눈 앞에 현실화된 꿈의 결과물들은 분명 실존할 수 있는 생명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몽상을 통해 우리의 과거 기억, 현재의 꿈 그리고 미래의 상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그들 생명체들에서 퇴적된 우리들의 삶과 판타지를 볼 수 있다.


페이스북공유하기 트위터공유하기 구글공유하기 Pin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