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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대화법 The Still: Logical Conversation
2009.2.28~3.30
강남

S 선생에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두서없이 김춘수님의 시 한 구절로 그간의 고민에 대하여 적어봅니다. 최근 몇 년간 우리미술계를 강타한 구상의 화풍은 수 많은 변종의 화법을 양산하였으며, 특히 세밀하게 묘사된 극사실 화풍을 주축으로 가히 한국구상미술의 전성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온갖 억측과 오해로 얼룩져만 가고 있어 답답한 심정입니다. 사물을 묘사하는 새로운 화법들은 종래의 그것과 비교하여 분명 손에 의한 테크네의 혁신이라 할 만한 변화를 가져왔고. 변화로 한국미술에 새로운 활기와 가능성에 불이 붙은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이 상황은 ‘달을 가리키는 손을 바라보는 아이러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구체적 사물의 재현을 고민해 온 작가들의 입장에선 테크네의 각축이 아니라 새로운 話法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화법이 의미의 전달을 뜻하는 화법이 아닌 그야말로 畵法으로 변질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그’들과의 대화에 귀 기울이고자 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일방적인 대화법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대화의 주체를 나에게 집중시키려는 이기심에서 시작된 것으로 심지어 대화의 상대조차 인식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더불어 귀를 통한 육성만을 인식하여 듣고도 못 듣는 심각한 난청이 되고 말았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전화기를 붙잡고 한 시간을 떠들어도 무슨 소리를 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급기야 누구와 통화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난청에 기억상실까지…… 멍한 허무함을 느낍니다. 여기 우리의 이런 장애와 이기적인 무심함을 뒤로하고 ‘그’들의 대화법에 귀 기울인 작가들이 있습니다. - 구본창작가의 버려진 비누사진들에서 자신을 내주어 갈라지고 닳아져 마침내 본래의 향기롭고 풍성한 거품을 만들지는 못 하지만, 수 많은 사람들의 손을 정화시켜 온 희생을 생각합니다. - 거친 古材의 나뭇결에 스며든 김덕용작가의 솜이불 한 채가 차갑게 식어버린 내 마음의 윗목을 덮어줍니다. - 아스라히 사라져 버린 원형의 기억을 지닌 김시연작가의 소금결정들에게서 지난 여름 ‘그’들이 흘린 땀과 자취에 대한 흔적을 더듬어 봅니다. - 무심히 읽고 펼쳐둔 책과 신문들이 남겨 놓은 흐릿한 잔상을 투명한 유리종이에 활자들을 각인시켜 잊혀지지 않을 메시지로 조각하는 황선태작가는 텍스트의 환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 앞만 보고 다가섰던 우리로 인해 왜곡되어버린 형체들을 품에 안은 박선기작가와 허상과 실상의 교차투영으로 신기루와도 같이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배준성작가의 노스텔지어 - 그림으로 읽혀지는 재현된 환영공간을 다시 사진으로 해석시킨 차원이 교차된 유현미작가의 작품은 그림자 조차도 박제된 변치 않는 대상의 영원성에 대한 물음입니다. - 화려한 색감과 사물로 구성된 화면의 이면에 가려진 구도자적 숨결과 의지를 지닌 홍경택작가와 무질서한 듯 정연한 카오스적 구조로 짜여진 사물들의 메커니즘을 구성한 정해윤작가의 현상계는 깊은 여백의 무한공간을 수반하고 있습니다. - 켜켜이 쌓여진 책들의 지층으로 자아를 발굴하는 김성호작가와 편집된 배경을 차용하여 사물의 영역을 확장시켜 온 황용진작가는 이차원의 평면을 개척하는 탐험가 입니다. - 윤병락작가의 사과들은 어릴 적 동산을 뛰놀던 허기진 나의 육신을 채워 준 친구들이며, 햇살을 머금은 검붉은 대추를 통해 풍성한 가을의 고향마을로 우리들을 인도해 주려는 이목을작가의 배려입니다. - 표면을 분석하고 나열하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물자체로의 환원을 시도하는 한운성작가와 투명한 빛의 스펙트럼으로 未知를 담아내는 허유진작가의 유리병들 - 구체적 대상을 시원스런 색, 면으로 간결하게 안착시킨 한슬작가와 세세한 모필의 흔적을 붓이 아닌 손으로 다가서는 이정웅작가는 기호화된 사물을 컨텍스트로 확장시켜 나갑니다. - 21세기형 바니타스 (바니타스(vanitas): 라틴어로 '덧없음'이라는 뜻. 17세기 초에 네델란드에서 꽃핀 중요한 정물화 양식)로 복원하는 김기라와 황순일작가의 정물화는 우리시대의 허무와 상실된 존재에 대하여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 일상적인 우리의 주변부를 원근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렌즈에 담아내는 이윤진작가는 일방적인 사물의 채집을 거부하고 ‘그’들이 보여지는 시선의 접점을 찾으려 합니다. - 대상을 간결한 선과 면으로 감각적으로 해석하는 황혜선작가의 영상작업에는 시공이 교차되어 시신경이 담아내지 못하는 실재와 환영의 중간계를 투영하고 있습니다. - 육신과 외계의 호흡을 가녀린 구리선으로 엮어낸 정광호작가의 작품에서 빈자의 맑은 영혼을 떠올립니다. ‘사물의 대화법’을 해석하는 작가들의 자세에서 사물과의 육체적 대화가 아닌 ‘그’들의 대화법을 이해하고 접근하려는 태도를 고민해 봅니다. 이제는 ‘그’들에게 진정으로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고 싶습니다.

- 2009년 이른 봄에 p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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