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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은 아주 오래전부터 물방울을 그리고 있다. 오늘도 물방울을 그린다. 그에게는 거절할 수 없는 그만의 이유가 있는 듯하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하여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있다. 변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마도 내일도, 모레도 아무런 대꾸 없이 물방울을 그리게 될 것이다. 별다름 없는 상태를 지속하게 될 것이다. 그가 하나의 캔버스에 물방울을 그리고 나면, 그의 물방울은 ‘어떤 것’이 확정적인 사실이 되어 공인된 격식이나 형식을 갖추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다른 캔버스에 물방울을 그리게 될 것이다. 그에게 그것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다. 그는 몇 시간, 며칠을 꾸부리고 작업해야 하는 수고를 수도자가 수행하듯이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업실에는 빛으로 가득하게 채워진 물방울들이 그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변함없이 그는 다시 작업에 몰두한다. / 김창열의 캔버스에 물방울들이 가득하다. 삽시간에 빛이 캔버스 위에 가득하다. 그러나 갑자기 시선을 돌렸을 때, 우리에게 별안간 다가오는 것은 전혀 알아 볼 수 없는 물감자국 뿐이다. 무엇인가 스치는 생각에 캔버스를 다시 보면, 가득한 물방울이다. 이것은 소위 일루젼이라 부를 수 있는 착시현상이다. 눈을 감고 보아야만, 조금 전에 보았던 캔버스의 어떤 물감자국이 하나의 물방울로 우리에게 각인 된다. 그것은 지금까지 아무도 정확히 본 적이 없는, 실재하지 않는 것 같은 물방울이다. 너무 일상적이어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조차도 믿기 어렵다. 모든 것이 잠잠해 질 때, 그것의 실체는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서 불려나와 하나의 개념을 전한다. 그것은 ‘있음’도 ‘없음’도 아닌 ‘개념’과 ‘실재’사이에 존재하는 항상 변하는 우리의 의식이며 영롱한 물방울을 지지하고 있는, 올이 굵고 성긴 마포와 특정한 의도에 의해 칠해진 물감으로서의 물성이다.

김용대, <침묵의 행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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