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향(大饗) 이중섭(b.1916-1956)은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에서 서양화가인 임용련에게서 미술지도를 받고,1936년 일본으로 건너가 분카(文化) 학원 미술학부 양화과에 입학하여 서구 모더니즘 미술을 토대로 한 미술수업을 받았다. 1941년 무학수, 이쾌대 등과 함께 조선신미술가 협회를 결성하여 민족적인 미의식 실현을 도모했다. 태평양전쟁 중 귀국하여 원산에 머물던 그는 6.25전쟁이 일어나자 남하하였다. 처참한 피란생활을 하던 그는 1952년 전쟁을 피해 아내와 아들들을 일본으로 보낸 후 고독과 자학으로 인해 정신분열증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의 화풍은 초기에는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한 향토적인 주제를 다루었으나, 차츰 가족과의 사랑과 이별등 자신의 신변에 관련된 주제를 야수주의적인 기법으로 소화하여 독특한 화풍을 이룩했다. 이중섭은 사후 그의 드라마 같은 생애가 세간에 알려지면서 명성을 얻었으며 박수근과 함께 근대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